1년

 



강아지처럼 정말로 나보다는 조금 높은 체온, 향긋한 바디로션 향, 그 안에 달큰한 살 내음, 손에 닿아 있는 보드라운 살결… 내 사람이라고 한다. 내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의 주장이다. 나에겐 선택권이 없다. 왜냐하면 나는 이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. 이것도 이 사람의 말이다. 그러니까 그 말이 다 맞다.


내 세상은 이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. 새까맣기만 해서 겨우 더듬거리며 조금씩 기어가던 내게 밝은 별빛이 켜졌다. 어둠이면서도 어둠이 두려워 움츠리고 있던 내게 별빛은 한 줄기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. 낮에도 별은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밤이 되어야만 거기 있었다는 걸 알듯이 그 사람은 내가 있어야 자신이 빛날 수 있다고 했다. 내 어둠에 존재의 이유를 준 사람을 위해 살지 않을 이유란 하나도 없었다.

비록 이런 내 마음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람을 위해서 좋다는 건 무엇이든 하고 싶다. 알아주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이 마음을 이 사람은 다 알아준다. 매일 더 사랑하며 바라보아도 내 빛나는 사람은 더욱 큰 마음을 돌려준다. 나따위가 이런 대단한 걸 받아도 되나 싶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마음을 매일 준다.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걸, 해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. 그렇게 해도 이 빛난 사람에겐 모자라다.


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. 모두가 동경하는 이의 연인이 된 내가 과분하게 얻은 특권이다. 천사 같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. 아마 천사가 있다면 내 사람의 자는 모습을 보고 흉내내고 싶어할 거다. 처음 같은 침대를 쓰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은 잠을 잘 이루지 못 하고 힘들게 잠들었다가도 작은 소리에 쉬이 깨곤 했다.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 이를 품안에 더 소중히 품어주는 것뿐이었다. 어느 날에는 내 곁에만 있어주느라 허전해졌을지도 모르는 그 등을, 또 다른 날에는 야윈 듯한 배를 쓰다듬어 조금이라도 온기를 전하도록 애썼다. 다행히도 내 부족한 온기 안에서나마 이 사람은 단잠에 빠지곤 했다. 

그렇게 몇 달이 지나 새로운 암초가 등장했다. 내 예쁜 사람이 자면서 이를 갈기 시작했다. 내 눈에는 그저 귀여워서 처음에는 자다 말고 가만히 지켜보곤 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스트레스의 산물이고 나중에는 악관절이 상할 수도 있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. 전처럼 잠에서 깨지 않게 되니 그 대신 이를 갈게 된 건가 싶어 자책도 되었다. 하지만 푹 자서 좋다는 내 별님 앞에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. 그날부터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이의 한쪽 턱을 톡톡톡 건드려주었다. 사랑하는 사람의 잠을 곤히, 건강하게 지켜줄 수만 있다면 내 잠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. 내가 이 사람의 것이라면 내 잠도 이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.


내 사랑은 내 사람을 중심으로 매일 더 다양한 형태가 된다. 오감이 다 발달한 내 별은 일을 할 때 더 매력적이지만 그런 만큼 자기의 모든 감각을 다 동원하는 탓에 쉽게 지치고 쉽게 예민해지곤 한다. 내가 뭘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건 행복한 고민이다. 입이 짧고 작품에 집중할 때는 위장이 예민해져 소화력이 떨어지는 그를 위해 소화가 잘 되고 편안한 메뉴들을 구상한다. 아침은 간단히, 준비하면서 왔다갔다 집어먹기 좋게 꼬치에 보코치니와 방울토마토를 꽂아 바질페스토와 발사믹 글레이즈를 곁들여 놓거나 보드랍게 잘 익힌 스크램블드 에그를 새콤달달한 잼을 바른 멜바토스트 위에 얹어 브루스케타처럼 집어먹을 수 있게 만들어두었다. 중간중간 촬영이 없는 날에는 되도록 브레이크타임마다 집으로 와서 간단한 메뉴라도 만들어주었다. 이제는 달걀도 편식하지 않는 내 착한 애인은 보잘것 없는 프리타타도 맛있게 먹어준다. 나따위에게 차를 선물하느라 고생해서 번 돈을 쉽게 쓴 건 속상했지만 그렇게 받은 차니까 아낌없이 이 사람만을 위해 쓰고 싶었다. 


내 안에 이 사람이 찰랑찰랑 가득 차서 충만하다고 느끼는 어느 순간에, 덜컥 두려워지곤 한다. 나는 어떤 예외도 없이 어느 때에나 온전히 그 사람의 것이지만 나는 그저 그 사람의 인생의 짧은 기간, 그 사람의 어느 한 부분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과분하게 여겨야 한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치기 때문이다. 온전히 나를 다 내어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 사람의 일부를 잠시 갖는 걸로 내가 만족하지 못 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.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지면 그 마음이 블랙홀이 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킬까 두렵다.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나 하나 사라지는 것은 별것 아니겠지만 이제 내 삶에서 이 사람을 잃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. 지금 나는 껍데기뿐이고 내 안에는 온통 내 사랑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. 나는 원래부터 이렇게 공허한 존재였던가. 기억이 나지 않는다. 


댓글